감명깊은 글

近水樓臺(근수누대)

불암솔 2009. 2. 12. 17:06

范仲淹(범중엄)은 孤兒(고아)로 자랐지만 독학으로 立身出世(입신출세)한 北宋(북송)의 명신이었다. 仁宗(인종)때 參政知事(참정지사)가 되어 정치개혁을 꾀했으나 반대파의 抵抗(저항)으로 挫折(좌절)을 맛보기도 한 걸출한 정치가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강직한 성품인가 하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온화하여 중국 역사상 대표적인 外柔內剛(외유내강)형의 인물로도 손꼽힌다. 그는 歐陽修(구양수) 張載(장재)같은 인물을 拔擢(발탁)함으로써 사람을 보는 안목도 높이 평가되었다.

범중엄이 杭州(항주)의 知州(지주)란 벼슬을 하고 있을 때도 항주성내의 文武官員(문무관원)들 중에는 그의 천거로 발탁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항주外縣(외현)의 巡察職(순찰직)으로 있던 蘇麟(소린)이란 사람은 심기가 불편하였다. 모두들 승진하고 있는데 범중엄의 눈에 띄지 않는 외지에 근무함으로써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항주 官衙(관아)에 들어갈 기회가 있어 소린은 범중엄에게 시 한수를 써 바쳤다.
시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범중엄의 시선을 끌었다. 

近水樓臺先得月    물가의 정자에서는 달을 먼저 볼 수 있고
向陽花木易逢春    햇빛을 향해있는 꽃나무는 쉽게 봄을 맞는다 


범중엄은 소린의 내심을 알아차리고 그가 원하는 부서에서 일하게끔 추천서를 써주었다.
이리하여 近水樓臺는 실력자의 視野(시야)에 들어있어야 승진·출세 할 수있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사람의 人選(인선)과정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인물만 뽑다보면 편중인사니 불공정인사니 하는 시비가 잇따른다.
국정을 책임졌다면 近水樓臺밖에서 널리 두루 인재를 구해야 할 것이다.